두 죽음을 보는 ‘두 시선’


전두환이 죽은 날 5.18 유공자 숨진 채 발견


▲ 11월 23일, 전두환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뉴시스·뉴스포스트
▲ 11월 23일, 전두환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별세했다. ⓒ뉴시스·뉴스포스트


작년 5월, 5.18 민주화운동 40주기를 맞아 초등학교 1학년 시절의 담임 선생님을 찾아뵀다. 마지막까지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공수부대에 붙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신 선생님은 후유증과 고령의 영향으로 기력이 쇠한 모습이었다. 선생님은 카페에 얕게 깔리는 음악소리에 묻힐 정도로 약한 목소리를 내면서도 전두환을 거론할 때만큼은 분노에 찬 눈빛과 거친 말들을 내뿜으셨다. 40년이라는 세월도 무책임한 가해자를 용서하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올 해 11월 어느 날, 언제까지고 골프채를 휘두르며 건강하게 살 것만 같던 전두환이 죽었다. 그는 남성 평균 기대수명인 80세를 훌쩍 넘긴 구순까지 정정한 모습이었고, 임종을 지킬 사람과 유언을 받들 사람이 있었다. 정치적 권력을 통해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았고, 3남 1녀 모두에게 막대한 부를 쥐어줬다. 전두환은 한국사회에서 이상적 가치로 여겨지는 건강, 부, 명예를 모두 얻어 간직한 채로 생을 마감했다.


같은 날, 5.18 민주유공자 이광영 씨(68)는 경찰에 의해 전남 강진군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씨는 5.18민주화운동 당시 부상자들을 구조하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하반신이 마비돼 평생을 후유증에 시달렸다. 몸에 박힌 20여 개의 파편에 고통스러워 진통제 없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던 그는 A4 한 장 분량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씨의 유서에는 “5.18에 대한 원한도 작은 서운함도 다 묻고 간다.”고 적혀 있었다.


이 씨뿐 아니라 많은 5.18 생존자들이 후유증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과 생활고 문제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곤 했다. 2020년 2월 6일 김명희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5.18 연구의 계보학: 치유되지 않은 5.18’이라는 학술대회에서 5.18 생존자들의 자살을 “1980년대 경험한 원초적인 국가폭력의 트라우마와 1990년대 보상 국면 이후 경험한 관계의 위기가 함께 만들어낸 숙명론적 자살(fatalistic suicide)의 한 형태”라고 말했다. 피해생존자들이 계속해서 죽어가고 그 고통이 유가족에게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광주는 수십 년에 걸친 국가적·사회적 폭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기 위해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배상정책을 넘어 가해자인 전두환에게 학살 인정과 진심어린 사과, 처벌 순응을 오래토록 요구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망자에게 발포 명령을 인정하라 요구할 수 없으며, 학살 이후에도 계속된 가해를 단죄할 수 없고, 부정히 착복한 재산을 제자리에 되돌릴 수 없다. 염원을 이룰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전두환과 이광영 씨의 삶은 마지막까지 달랐다. 전두환은 보수 언론에 의해 전 대통령으로 예우 받았고, 여야 대선 후보들은 공식 석상에서 전두환의 정치·경제적 성과를 추켜세운다. 쿠데타 추종자와 후계자들의 맹목적인 음해, 부패에 기반한 자손들의 부와 명예가 더해 5.18에 상처 입은 모든 이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이 계속되고 있다. 영원한 고통과 갈 곳 잃은 분노를 삭이는 고행은 오롯이 산 자의 몫으로 남고 말았다.








글 = 박상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