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각자의 자리에서 “울퉁불퉁하게” 청년 말하기




웹진 <위디터Weditor>를 제작하며 못다 한 뒷이야기를 해볼까합니다. <위디터Weditor>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래서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 차근차근 풀어내보려 합니다.


정말이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첫 투표 결과만 해도 내 이름이 불린 횟수는 단 두 번에 그쳤다. 시간이 갈수록 이름 옆에 正자가 빼곡하게 그려졌다. 아는 얼굴 없는 강의실 뒤편에 앉아서 손바닥에 나는 땀을 부지런히 닦았다.

성공회대 신문방송학 전공과목 <기사작성과 편집>은 웹진 제작 실습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웹진 제작은 하나부터 열까지 학생들이 직접 진행하는데, 따라서 제작을 총괄하는 편집위원의 역할이 탄탄하게 받쳐줘야 한다. 과목 교수님에 따르면 <기사작성과 편집>은 지난 20여 년 동안 편집위원을 전체투표로 결정하는 전통을 가지고 왔다. 그렇게 올해도 전체투표를 진행했고, 그 결과 편집은커녕 기사 한 줄 써보지 않은 사람이 편집장 자리에 앉게 된 것이다.

편집장에 이어서 부편집장, 웹마스터와 부웹마스터, 그리고 지문별 팀장까지. 모두 8명의 편집위원이 전체투표로 선출되었다. 모두가 얼떨떨한 얼굴로 짧게 인사를 마친 후 편집위원의 역할에 들어섰다.
























■ ‘청년’에서 ‘우리’가 되기로

편집위원에게 주어진 첫 과제는 30분간 주어진 편집회의에서 대략적인 웹진 콘셉트를 정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둘러 웹진 제작에 있어서 바라는 점을 한 가지씩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처음엔 ‘누구나’, ‘쉽게’, ‘친절한’과 같은 표현이 나오더니, 곧 기성 언론의 문법과는 다른 접근을 하고 싶다는 의견으로 말이 모였다. 수업에서 거듭 분석하고 비판했던 기성 언론에 대한 대안을 직접 상상해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기성 언론의 특징이 뭘까?”라는 질문에 냉큼 한 편집위원이 주술어가 비어있다는 점을 짚었다. 우리는 수업을 통해 언론에서 줄곧 청(소)년, 노동자, 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다룰 때면 실제 그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며, 오히려 정치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목격할 수 있었다. 우리 역시 직접 말하기보다 자주 호명되는 입장으로 이와 같은 구도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따라서 편집위원은 짧은 회의 끝에 ‘우리’의 관점으로 쓰는 웹진을 제작하기로 했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당장 <기사작성과 편집> 수업을 듣는 수강생에서부터 성공회대 학생, 20대, 청년, 그리고 웹진을 찾는 이들까지 확장할 수 있는 유동적인 층위이자 스스로 말하며 서로를 살피는 존재라고 할 수 있겠다.



■ 부딪치는 ‘우리’들

호기롭게 시작된 웹진 제작 실습은 예상치 못한 다사다난한 난항을 겪어야 했다. 주제가 모호하여 몇 차례씩 기획서를 뒤엎거나, 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취재가 거절되기 일수였다. 그중에서 가장 난감했던 것은, 편집위원을 포함한 각각의 기자들이 ‘우리’에 대해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우리’를 시대의 주축이 되는 MZ세대라고 내세웠고, 누군가는 통계학적인 2030대로 불렀다. 또 어떤 이는 ‘우리’에 대해 가능성 있는 대학생이라고 서술했고, 다른 이는 기성 언론의 말투 그대로 ‘젊은이’라고 칭했다. 매끈하지 않은 ‘우리’는 불완전한 느낌을 주었고, 따라서 주제에 대해 더욱 심도 있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 “울퉁불퉁한” 청년 말하기

상황을 또렷하게 조명하기 위해서는 떨어진 거리에서 객관적인 조언이 필요했다. 서둘러 좋은 동료이자 청년연구자인 성용을 불러 상황을 나눴다. 성용은 웹진의 맥락과 고민에 공감하면서도 단호하게 “어쩌면 청년은 없을지도 모른다”며 운을 뗐다.

성용은 오늘날 청년을 말하는 범주가 무척 단편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제 청년들은 스스로를 청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며, 청년이라는 세대 범주 안에서도 계급, 젠더, 지역, 국적과 민족, 학력 등의 배경으로 입장이 세세하게 나뉜다고 했다. 너무나도 다른 개개인을 하나의 층위인 ‘청년’으로 호명하는 것은 2030대 세대를 정치적으로 동원하기 위한 시도와 같다. 대표성으로서의 ‘청년’을 필요로 하는 사회적 호명은 실체가 아닌 담론만 남아버린 것이다.

성용은 이러한 상황을 자신의 위치에 빗대어 설명했다. 성용은 자신을 ‘청년연구자’로 소개하며 청년으로서 연구하고, 또 청년을 연구한다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세대와 연령에 따른 청년 당사자가 되어 사회적 호명에 응답하지만, 동시에 그의 연구 속에서 더욱 다양한 실제 청년들의 모습을 드러내고자 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고 그렇다고 흡수될 수도 없으니, 조금씩 구조를 재구성하고 전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어 성용은 “언어가 참 어렵다”며, 청년 각자의 정체성과 위치성에 따라 제각기 고민이 다르기에 그 실재를 대표하지 않고 일부로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곤 성용은 최근 푹 빠진 가수가 자신의 고민과 맥을 나란히 하는 듯하다며 다음과 같은 말을 소개했다. “하고 싶은 말이 무수히 많지만. 매번 참아요. (…) 저는 자꾸 노래로 두루뭉술하게 전해요. 그러면 더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니까요. 정확하지 않아서. 그렇게 계속 우리가 같이 갔으면 좋겠어요.”(가수 다린, 2020)

청년 범주 안에서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촘촘하게 담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언제든 새로운 이야기가 담길 수 있게 여백과 침묵으로 자리를 비워두는 것 역시 함께 가야 한다고 성용은 힘주어 말했다. 이렇듯 ‘청년’이라는 정체성은 결코 균일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기에, 누군가 스스로를 설명할 때 딱 맞는 언어일 수 없다는 것이다.



▲ 웹진 <위디터> 기자들과 담당 교수 ⓒ위디터


■ 다시 ‘우리’ <위디터Weditor>에서

성용과의 만남 이후 제각기 다른 언어와 관점, 방식으로 ‘우리’를 말하는 기사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웹진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았다. 그보다는 너무나도 다른 우리가 매끄러운 ‘우리’를 다룰 수 있는지 자문했다. 스스로 던진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지금의 <위디터Weditor>를 엮어냈다. 여러분의 응답을 기다려본다.


취재, 글=은승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