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공결제’ 역차별이라고?


초•중•고 시절 가정 시간에 생리대 에티켓을 배웠다. 생리대는 항상 가방 안 속에 들고 다녀야 하며, 화장실을 갈 때면 주머니나 옷 속에 넣어 보이지 않게 다녀야 한다고 배웠다. 그것이 ‘에티켓’이라는 이유다. 학교에서 배운 생리는 숨겨야 하고 남에게 말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우리가 생리를 ‘마법의 날’로 불렀던 이유다.



지난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로 생리공결제가 시작됐다. 생리통을 “여성의 신체적 특성 중 하나로 보면서 여성의 건강권 보장 측면에서 적절한 사회적 배려의 대상”으로 판단한 것이다. 벌써 16년째다. 뿌리를 내릴만도 하건만 계속해서 논쟁의 불씨가 댕겨지는 것은 제각각인 운영 방식 때문이다. 한 달에 한 번 생리 결석이나 조퇴를 신청할 수 있는 곳이 있으나 증빙서류는 들쭉날쭉하다. 병원 진단서를 요구하는 학교가 대부분이고 산부인과 진단서를 요구하는 학교도 있다. 생리통이 심할 때 학교 조퇴를 하고 아픈 몸을 이끌며 내과를 찾아간 기억이 떠오른다. 힘들게 내과를 찾아가면 소용없는 내복약을 형식적으로 처방받아야 했다. 매번 병원에 가면 4000원 정도의 진료비가 나왔는데, 아플때 마다 병원을 찾아야 하는 일이 부담이었다.



남용과 역차별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생리 기간을 증명하기 어렵다는 문제로 생리공결제를 남용하는 경우가 있고,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생리공결제가 다른 이들에게 수업에 지장을 주거나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생리공결제 남용으로 가장 피해를 받는 것은 대학에 등록해놓고 수업 내용을 알 수 없는 생리공결제를 남용한 본인이다. 또 생리통이 심해 생리공결제를 쓰려는 다른 여학생이 피해자가 된다. 생리공결 신청서를 낼 때 ‘아프지도 않은데 생리공결제를 남용한다’는 비난과 의심의 시선을 마주쳐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리를 하지 않는 남성’은 생리공결제 남용의 최대 피해자가 될 수 없다. 오히려 그 피해는 온전히 생리를 하는 학생들에게 돌아온다. 아플 때 수업에 빠지는 것을 역차별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정상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기에 신체적으로 어려운 상태인 학생들을 위한 ‘배려’는 특혜가 아니다.



이런 생리공결제에 대한 논란은 여성의 신체를 규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시작되었다. 사적이고 개인적인 신체 현상을 공적인 영역에서 단정 짓고 규제하려는 시도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생리공결제의 사용하는 주체인 ‘여성’은 항상 생리공결제 존폐 논쟁에서 논외였다. 이는 현실을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로 이어지게 된다. 또 개인적인 신체적 현상에 의해 출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여성의 몸에 단순하게 일반화시켜 관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본질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게 생리공결제를 사용하는 방식인지, 생리공결제 도입과 운영에 대한 원점을 고민해야 할 시기가 아닐지 고민해봐야 한다.


오영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