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지금 당장, “일하는 사람 누구나” 근로기준법
권리찾기유니온 허성희 정책국장이 말하는 ‘5인 미만 사업장’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에게는 근로기준법이 전면 적용되지 않는다. 다른 법안들에서도 소외되는 건 마찬가지다. 이전부터 근로기준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있었지만, 차별은 폐지되지 않았다. 권리찾기유니온의 허성희 정책국장을 만나 현재 근로기준법의 문제점과 변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새로 부임한 상사와 불화가 있었습니다. 이후 상사는 저를 계속 괴롭혔고 어느 날 갑자기 해고 통보를 했습니다. 사유를 물어보니 ‘너랑 일하기 싫어서’라고 답했습니다.”
“매일 야근과 휴일 근무를 했습니다. 새벽까지 일해도 야간수당을 받지 못해 월급은 250만 원이 넘지 않았습니다. 추석과 설날을 제외한 빨간 날에도 일했는데 추가 수당은 없었습니다.”
지난 10월 직장갑질 119가 발표한 ‘5인 미만 사업장 갑질 보고서’에 실린 사례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된 채 고통 받는다. 다른 법에서도 소외되는 건 마찬가지다. 공휴일법에 따라 지난 10월에는 두 번의 대체공휴일이 있었지만, 이들은 쉴 수 없었다.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가 겪는 차별은 왜 철폐되지 않는 걸까. 소외된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 권리찾기유니온에서 근로기준법 개정안 입법 운동을 담당하는 허성희 정책국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야말로 보호 대상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것은 아니다. 근로기준법 11조는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에만 이 법을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로 인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근로기준법 상의 부당해고 구제, 법정근로시간, 연장·야간·휴일수당, 연차휴가 등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해도 구제받을 수 없다. 대통령령에 따라 근로기준법의 일부 규정만 적용받을 뿐이다.
허 정책국장은 “5인 미만 사업장에는 근로시간 제한이 없는데 연장근로수당 지급 의무도 없어 노동자들이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요. 해고를 당해도 구제받을 수 없고요”라며, 5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근로기준법 규정들이 부수적인 게 아니라 기본적인 것들이라고 짚었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455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 중 28%이다. 네 명 중 한 명의 노동자가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고 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차별은 다른 법들이 5인 미만 사업장을 제외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노동계의 힘겨운 투쟁 끝에 지난 1월 제정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재를 비롯한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을 갖는다. 하지만 정작 산재가 만연한 5인 미만 사업장은 이 법에서 제외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망자 882명 중 35.4%가 5인 미만 사업장 소속이었다. 또 공휴일법은 모든 국민에게 대체공휴일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7월 제정되었다. 그러나 법적으로 보장된 내년 유급 휴일은 5인 이상 사업장의 경우 최소 28일이지만 5인 미만 사업장은 없다.
허 정책국장은 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의 권리가 보장될수록 5인 미만 노동자들은 더 많은 차별에 노출되는 것”이라며 5인 미만 사업장이 계속 제외되는 이유는 다른 법이 제정될 때 근로기준법을 표준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영세사업장, 차별의 근거 될 수 없어
그동안 정부 기관들은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을 줄여나갈 것을 제안했다. 2008년 국가인권위는 “5인 미만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 개선과 노동기본권 및 생존권 보호를 위해”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로기준법 적용을 확대할 것을 권고했다. 고용노동부개혁위원회와 국회입법조사처, 법제처도 근로기준법 적용 확대의 필요성을 제기한 바 있다. 그러나 변화는 없었다.
노동계는 지난해 9월, 근로기준법 11조가 폐지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국회에 국민동의청원했다. 국민동의청원은 국민이 청원한 법안이 30일 이내에 10만 명의 동의를 받으면 소관 상임위에 회부되는 제도로, 개정안은 9월 19일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21일 환경노동위원회에 회부되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고 있지 않다.
오랜 시간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차별이 폐지되지 않는 이유로 허 정책국장은 ‘영세사업장의 부담’을 꼽았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1999년과 2019년 ‘영세사업장의 열악한 현실’을 근거로 들어 4인 이하 사업장의 근로기준법 일부 적용 배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한 바 있다. 이에 허 정책국장은 “영세사업장이 어렵다면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시키는 게 아니라 국가가 다른 방식으로 지원하는 게 맞죠.”라며 국가의 책임을 강조했다. 더하여 그는 영세사업장이 어렵다는 전제에 대해서도 “근로기준법을 바로 적용하는 게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사업장이 많다”며 의문을 제기했다. 고용노동부의 ‘1차 산업 및 4인 이하 사업장 근로시간 실태조사(2019)’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의 사업주 응답 결과 79%가 주당 근로시간 한도(주 40시간)를 적용 중이라고 답했다. 연장근로시간 한도(주 52시간)에 대해서도 75%가 이미 적용 중이거나 적용 가능하다고 답했다.
그러나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면 지금까지 지급하지 않아도 되었던 인건비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해 근로기준법을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허 국장은 “근로기준법은 지금 당장 전면 적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떤 권리가 핵심이고 주된 권리인지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또 “국가가 지원책을 마련해 영세사업장이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5인 미만 사업장의 문제, 공론화 필요
어떤 제도가 개선되기 위해선 시민들의 여론 역시 중요하다. 허 정책국장은 “5인 미만 사업장은 원래 그런(차별이 만연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것 같다”며, “사람들이 5인 미만 사업장 문제를 생각해볼 기회를 갖는 것이 중요해요. 운동을 통해 이 문제를 공론화시키면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지 않을까요”라고 희망했다.
이어 그는 연대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나갔다. “학생사회에서 5인 미만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겠어요. 많은 대학생들이 알바를 하면서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으니 충분히 공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국회 투쟁에도 함께 해주시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의 말처럼 5인 미만 사업장은 우리의 문제다. 현재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든 아니든 11조 규정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노동은 차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의 향방에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다.

인터뷰를 마치고 떠난 허성희 정책국장의 자리에 그의 명함 한 장이 남았다. 이름 위에 적힌 문장이 눈에 띄었다. #일하는사람누구나_근로기준법. 그가 바라는 노동자 차별 없는 사회는 우리 모두의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이기도 할 것이다.

취재, 글= 김경호 기자